1. 이유없이 불안한 날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없음에도 이유 모를 불안이 밀려오는 날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온종일 마음이 조용히 조급한 날. 처음엔 ‘무슨 일이 있었지?’ 하며 자꾸만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날의 감정은 분명한 이유 없이 찾아오고, 그럴수록 나는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늘 웃으며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던 어느 날,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나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일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진짜 괜찮은 게 아니었다는 걸. 그 후로야 겨우 ‘지금 나는 불안하다’, ‘조금 힘들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은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억누르려 하기보다, ‘지금 나는 이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 그 작은 인정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압박을 조금씩 덜어줍니다. 이유 없는 불안은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돌봄이 필요한 상태를 알려주는 조용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바라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크게 바뀌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를 이해하는 가장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2. 처음 써 본 감정기록
최근 들어 저는 불안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법을 하나 시도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감정기록’을 해보는 것입니다.
처음엔 ‘감정을 글로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그 효과는 조용하면서도 단단했습니다.
일단 글을 잘 쓰려고 하지 않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한 문장씩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이유 없이 초조했다. 병원에서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쓰기 시작하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서서히 구체적인 문장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내가 정말로 느끼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들여다보이기 시작합니다.
“무기력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라는 문장을 적은 날에는 생각보다 내가 스스로를 잘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감정기록은 저에게 있어서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확인하고, 돌보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정을 어떻게 글로 써야 하지?’, ‘뭐부터 써야 하지?’ 싶으면 아래 방법을 따라해 보면 도움이 될 것 입니다.
-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 한 가지를 씁니다.
- 그 감정을 느낀 시간이나 상황을 적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줄 써봅니다.
예를 들어,
감정: 조급함
상황: 야간 근무 후 아침 퇴근길, 갑자기 막막한 기분
나에게 해주는 말: 오늘은 천천히 쉬어도 괜찮아
이런 식으로 짧게라도 써보는 것만으로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머리 안에서 맴돌던 것들이 종이 위로 빠져나오는 것처럼요.
3.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
감정기록을 시작한 후,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건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 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불편한 감정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습니다. 불안은 무시하고, 슬픔은 덮어두고, 괜찮은 척하며 그 순간을 넘기는 데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외면하다 보니, 감정이 더 커지고 무겁게 쌓이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억지로 없애기보단, 그 감정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가만히 들어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아직도 잘 되지 않습니다. 불안이 심할 땐 도망치고 싶고, 슬퍼지는 날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글로 써보려고 앉아 있다가, 한 줄도 못 적고 그냥 눕거나 핸드폰만 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그저 “지금은 내가 힘들구나”, “오늘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정하게 만들어주고, 비난이 아닌 위로로 나를 대하게 해줍니다.
나는 아직도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어요. 감정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조차도, 하나의 과정 속에 있는 나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서툴고 느리지만, 그 서툰 나의 시도가 언젠가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정이 복잡한 날일수록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